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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질병청, 검역 패러다임 대전환… '유입 차단'서 '여행자 건강 보호'로 2027년까지 '여행자 건강 중심 검역체계' 구축
  • 심민정 기자
  • 등록 2025-12-18 08: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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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 검역 [Gemini 생성 이미지]

질병관리청이 기존의 감염병 유입 차단 위주의 검역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팬데믹 이후 급증하는 국제 이동과 감염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AI(인공지능)와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검역을 도입하고, 여행자 개개인의 건강 예방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질병관리청(청장 임승관)은 1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여행자 건강 중심 검역체계 구축 추진(안)’을 발표하고, 오는 2027년까지 이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안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감염병 위기 대응 체계 개선’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지난 1년간의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체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여행자에게 통합된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원스톱 플랫폼의 구축이다. 질병청은 현재 ‘해외감염병 NOW’, ‘Q-CODE(큐코드)’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여행 건강 관련 누리집을 일원화한 ‘여행건강알림e’ 플랫폼을 2026년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여행자 건강(Travelers' Health) 사이트나 영국 보건안보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이 플랫폼은 여행 전, 중, 후 단계별로 필요한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한다. 국가별 여행 건강 정보, 중점검역관리지역 안내, 예방접종 정보는 물론 여행자 상담 기능까지 탑재하여 이용 편의성을 대폭 높일 계획이다.


정보 제공 방식도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기존에는 중점검역관리지역 입국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건강 정보가 제공되었으나, 2026년 하반기부터는 카카오톡을 활용해 출국자에게도 맞춤형 정보를 발송한다. 외교부와의 협조를 통한 정보 제공은 유지하되, 특정 시기에 주의가 필요한 검역관리지역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국민들이 해외 체류 중 감염병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와 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검역 현장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된다. 질병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공공 AX(인공지능 대전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2026년까지 ‘여행자 친화적 AI 검역 솔루션’을 개발한다.


이 솔루션이 도입되면 입국장에는 원격 발열 감시 카메라와 2중 게이트(2-DOOR GATE) 형태의 비대면 검역 심사대가 설치된다. AI가 해외 감염병 발생 동향과 입국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검역 단계를 자동으로 조정하며, 유증상자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지원한다. 특히 외국인 여행객을 위해 다국어 자동 통번역 기능을 갖춘 증상 신고 스크린이 설치되어 언어 장벽 없는 신속한 검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질병청은 해당 시스템을 2026년 하반기부터 김해공항에 시범 적용한 뒤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검역 단계에서 호흡기 증상이 있는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 검사 서비스도 전국으로 확대된다. 현재 7개 공항만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이 서비스는 내년 2월부터 전국 13개 검역소로 확대되며, 1급 검역감염병과 역학적 연관성이 없더라도 증상이 있는 희망자에게 인플루엔자(독감), 코로나19, 동물인플루엔자 등 3종에 대한 무료 검사를 제공한다.


운송 수단에 대한 위생 관리 기준도 국제 표준에 맞춰 강화된다. 질병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지침에 따라 선박위생증명서 발급 절차를 2026년부터 표준화하기로 했다. 기존의 육안 검사 위주에서 벗어나 ATP 측정기 등 전문 검사 장비를 도입해 현장에서 즉각적인 오염도 측정이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이와 함께 1977년 이후 거의 변동이 없었던 선박 위생 검사 수수료도 현실화한다. 현재 한국의 검사 수수료는 2~10만 원 수준으로 일본(15~50만 원), 미국(1,100~9,400만 원) 등 주요국에 비해 턱없이 낮아 검사 신청이 쏠리는 문제가 있었다. 질병청은 이를 국내외 형평성에 맞게 약 3배 인상하여 정비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관리 사각지대였던 항공기 위생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선박과 달리 명시적 규정이 없었던 항공기 위생 조사를 위해 검역법 개정을 추진하고, 2027년까지 감염병 매개체 유입 차단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한편, 질병청은 이날 검역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 ‘2026년 1분기 중점검역관리지역’ 지정 내역도 함께 발표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마버그열이 유행 중인 에티오피아가 중점검역관리지역으로 신규 지정되며, 이를 포함해 총 24개국이 집중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질병별로는 페스트 관리를 위해 콩고민주공화국, 몽골, 마다가스카르, 미국(뉴멕시코주) 등이 지정되었으며, 동물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과 관련해서는 멕시코와 미국(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등이, 인체감염증 관리를 위해서는 중국의 10개 성·시와 인도, 캄보디아 등이 지정되었다.


반면, 콩고민주공화국은 최근 에볼라바이러스 유행이 종료됨에 따라 에볼라 관련 중점관리 지역에서는 해제되었으나, 페스트 발생 위험이 여전해 전체적인 지정 상태는 유지된다. 또한, WHO가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종료한 엠폭스는 내년부터 검역감염병 목록에서 완전히 해제되어 일반 의료체계 내에서 관리될 예정이다.


중점검역관리지역을 체류하거나 경유한 입국자는 검역법에 따라 입국 시 Q-CODE(큐코드) 또는 건강상태질문서를 통해 의무적으로 건강 상태를 신고해야 한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추진안은 단순히 입국자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행자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서비스 중심으로 검역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라며 “평시에는 예방과 정보 제공에 주력하고, 위기 시에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튼튼한 방역 체계를 완성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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