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인 전두측두엽치매, 서양과 임상 양상 뚜렷이 달라… 한국형 진단 기준 개발 시급
  • 김영수
  • 등록 2025-12-17 08:42:19
기사수정
  • 질병관리청, 조발성 치매 코호트 분석 결과 발표… 얼굴 인지 장애와 탈억제 증상 두드러져

M365 Copilot 생성이미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뇌질환 연구 기반 조성 연구사업(BRIDGE)’을 통해 구축된 한국인 조발성 치매 환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 환자의 임상 증상이 서양 환자와 뚜렷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이는 기존 국제 진단 기준만으로는 한국인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며,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진단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한다.

 

전두측두엽치매는 주로 50세에서 65세 사이의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 발병하는 퇴행성 치매로, 흔히 알려진 알츠하이머병과는 달리 기억력 저하보다 성격 변화, 감정 둔화, 언어 기능 저하 등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임상적 특징 때문에 조발성 치매(만 65세 이전 발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초점을 맞춘 우측 측두엽변이 전두측두엽치매(right temporal variant frontotemporal dementia, rtvFTD)는 익숙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 인지 장애(프로소파그노시아)나 감정 반응이 줄어드는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얼굴 인지와 감정 처리에 중요한 뇌 부위인 우측 측두엽과 방추회(fusiform gyrus, 사람 얼굴 인식 기능 담당) 부위가 주로 손상되는 치매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rtvFTD 유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통일된 진단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연구진은 국내 11개 병원에서 모집한 전두측두엽치매 환자 225명의 임상 정보와 뇌영상(MRI) 자료를 분석하고, 서양에서 제안된 두 가지 rtvFTD 진단 기준, 즉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진단 트리(Amsterdam Diagnostic Tree, ADT)와 미국 UCSF의 sbvFTD(semantic behavioral variant frontotemporal dementia) 기준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검증했다.

 

연구 결과, 얼굴 인지 장애는 한국인 환자와 서양인 환자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인 rtvFTD 환자는 서양 기준(ADT, sbvFTD)에서 주요 증상으로 강조되는 기억 장애, 우울증, 공감 능력 저하, 강박적 사고 등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대신,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거나 충동적인 언행과 행동을 참지 못하는 '탈억제' 증상이 한국인 환자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그리고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한국인 특이 유형이 확인되었다. ADT 기준은 얼굴 인식 장애, 기억력 저하, 우울증을 주된 증상으로 제시하지만, 한국인 환자에게서는 기억 장애와 우울증이 rtvFTD의 특이 증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뇌 영상(MRI) 분석에서도 얼굴 인식 기능과 관련이 깊은 우측 측두엽 및 방추회 부위의 위축 패턴이 한국인 환자에서도 뚜렷하게 관찰되어, 임상적 특징과 뇌의 병변 부위가 일치함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인 환자의 임상 양상과 문화적 행동 특성이 서양 환자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얼굴 인식 장애는 있지만 기억력 저하와 우울증이 적은 한국인 환자의 경우, ADT 진단 기준에 따르면 rtvFTD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의 검증 결과, ADT 기준은 민감도는 비교적 높았으나 특이도가 낮아 단독 적용 시 한계가 있었으며, UCSF sbvFTD 기준 역시 한국인 환자에서는 임상적 구분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는 기존의 국제 진단 기준만으로는 한국인 rtvFTD를 조기에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만, 두 기준 모두에서 뇌 영상 기반 평가를 병행할 경우 진단 정확도가 유의하게 향상되는 점도 확인되었다.

 

본 연구를 주도한 김은주 교수는 "한국인 환자의 임상 표현 양상과 문화적 행동 특성을 고려할 때, 기존 국제 기준만으로는 rtvFTD를 조기에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한국형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진단 기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립보건연구원 고영호 뇌질환연구과장은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거나 감정이 둔해지는 변화는 단순한 성격 변화가 아니라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며, "한국인의 임상 양상을 반영한 새로운 진단 기준 개발을 위해 연구를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성과는 국가 주도로 구축한 코호트가 실제 진단 기준 검증 및 치매 아형 분류 연구에 활용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국가 단위 코호트의 장기 추적 연구를 지속하여 임상 현장에 도움이 되는 과학적 근거를 꾸준히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Alzheimer's & Dementia'에 게재되어, 한국인 치매 연구의 독자적인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는 국립보건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는 ‘뇌질환 연구 기반 조성 연구사업(BRIDGE)’을 통해 확보된 ‘조발성 치매 환자 코호트(LEAF)’ 자료를 활용했다.

 

BRIDGE 사업은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 예측 모형 개발, 예방·관리 지침 개발 등을 위해 산재된 뇌질환 코호트 인프라를 통합하고 연계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호트 공통 항목 설정, 단계별 정제 등을 통해 고품질의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며, 뇌 영상, 유전체 표준화 데이터까지 연계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조발성 치매 환자 코호트(LEAF)는 발병 나이가 만 65세 이전인 조발성 치매 환자, 경도 인지 장애 환자 및 그 가족을 장기간 추적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연구이다. 

 

2021년부터 1단계 사업이 시작되었고, 현재 2단계가 진행 중이다. 이 코호트는 전국 35개 병원(25년 기준)이 참여하며, 전두측두엽치매, 조발성 알츠하이머 치매 등 65세 미만 발병 환자와 인지 정상군, 그리고 가족력이 뚜렷한 환자의 직계 가족(가족 코호트)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수집 항목으로는 임상·역학 정보, 신경 심리 검사, 혈액 검사, 뇌 영상 검사(MRI, 아밀로이드-PET), 전장 유전체 분석(WES, WGS), 인체 자원(혈장, 혈청, DNA, PBMC)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국가 주도로 구축된 코호트 연구 인프라를 활용한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한국형 치매 진단 체계 확립과 조발성 치매 조기 진단 정확도 향상에 중요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