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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데이터의 칸막이가 허물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진료정보교류 사업’ 참여 의료기관이 1만 개소를 돌파하며, 환자가 직접 종이 서류를 들고 병원을 전전하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중심의 환자 맞춤형 진료 체계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장관 정은경)는 2026년 2월 12일, 의료기관 간 환자의 진료기록 공유를 지원하는 진료정보교류 사업의 참여 기관이 10,332개소를 기록하며 사업 시작 이래 처음으로 1만 개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 기록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현장 전반에 ‘환자 중심의 진료 협력 체계’가 뿌리 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과거 환자가 대형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뒤 집 근처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옮기거나, 반대로 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할 때 가장 큰 불편은 ‘기록의 전달’이었다. 환자는 병원 창구에서 CT나 MRI 결과가 담긴 CD를 굽고, 진단서와 진료기록지 사본을 직접 발급받아 수기로 전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적·경제적 비용은 오롯이 환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진료정보교류 사업의 확산으로 이러한 풍경이 바뀌고 있다. 사업에 참여하고 동의한 국민은 새로운 병원을 방문할 때 별도의 진료기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병원의 의료진이 시스템을 통해 이전 병원의 진료기록을 직접 확인하고 진료에 바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한 해 동안 이 시스템을 통해 공유된 진료정보는 영상정보를 포함해 약 181만 건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복 검사를 줄여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의료진에게는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오진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업의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현재 전체 참여 기관은 1만 개를 넘었지만, CT나 MRI 같은 고용량 영상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관은 약 600개소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균형은 개별 의료기관의 인프라 차이에서 기인한다. 영상정보 공유를 위해서는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뿐만 아니라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과의 고도화된 연동 및 추가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소 병원이나 의원급에서는 이러한 추가 비용과 기술적 대응이 다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오는 4월부터 '진료정보교류 확산사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이나 포괄 2차 지원사업 등 기존 의료 정책과 연계하여, 병원 간 협력이 필수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참여 의료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의료 데이터가 진료실을 넘어 ‘행정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료정보교류 사업은 현재 병역판정, 상이등급 판정, 산재 판정, 장애 심사 등 다양한 공공 행정 절차와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병역 판정을 위해 본인의 진료기록 사본을 떼어 병무청에 제출해야 했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통해 정부 기관에 안전하게 기록이 전송된다. 이는 '서류 없는 행정'을 실현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하며 국민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수요조사를 거쳐 이러한 공공서비스 연계 범위를 더욱 넓힐 예정이다.
정부는 시스템 고도화와 함께 보안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의료 데이터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만큼, 유출이나 오전송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보안 관리 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도서·산간 지역 등 의료 취약지에 있는 의료인과 대도시 협력 병원의 의료인 간 '비대면 협진'을 지원하는 기능도 강화될 예정이다. 이는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기술적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일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이번 성과를 두고 "환자 중심의 진료협력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데이터 고속도로가 완성되려면 영상정보 공유의 전국적 확대와 더불어, 참여하는 개별 의료기관들의 시스템 표준화가 더욱 가속화되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투명한 관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옮겨도 끊김 없는(Seamless) 케어를 받을 수 있는 '따뜻한 디지털 의료'의 실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