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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메디컬'의 대도약, 9,400억 투입해 글로벌 의료기기 패권 노린다
  • 이지우
  • 등록 2026-02-12 08: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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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6년 1차년도 신규과제 공고를 시작으로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을 본격 가동한다.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 동안 총 9408억 원(국고 8383억 원, 민자 1025억 원)을 투입해 기초·원천 연구부터 제품화, 임상, 인허가까지 의료기기 R&D 전 주기를 범부처가 공동 지원하는 구조다. 

 

이번 사업은 ‘2기’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202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사업의 후속 성격이 강하다. 실제 보도자료는 과제 설계가 2025년 8월 예비타당성조사 기획 결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술 동향과 연구현장의 수요를 반영해 구체화됐다고 밝힌다. “전주기 지원”이라는 뼈대는 유지하되, ‘첨단’과 ‘플래그십’에 무게를 실어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첫해(2026년)에는 국비 593억2500만 원을 투입해 106개 신규 과제를 지원한다. 신규 과제는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글로벌 플래그십 의료기기’ 5개 과제에 134억2500만 원을 배정한다. 세계 최초를 겨냥한 ‘자율조향 연성 내시경’, ‘체내이식형 뇌-AI-로봇 실시간 연동 시스템’이 포함되고, 세계 최고 수준을 목표로 ‘전신용 디지털 PET’, ‘디지털 PCR’, ‘방사선 암치료기기’가 제시됐다. 

 

둘째, ‘의료기기 코어기술 및 제품개발’ 68개 과제에 355억5000만 원을 투입한다. 여기에는 퇴행성 뇌질환 진단 시스템, 디지털 수술 보조 로봇 협동시스템 등 제품개발 21개가 들어가고,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료용 로봇 등 기초·원천 30개, 그리고 신생아·소아용 인공호흡기 등 필수의료기기 국산화 7개가 포함된다. 특히 눈에 띄는 장치는 ‘이어달리기’다. 이전 전주기 사업 및 우수 기초·원천 과제를 제품화 개발로 연계 지원하는 10개 과제를 별도로 명시했다

 

셋째, ‘의료현장 진입역량 강화’ 33개 과제에 103억5000만 원을 배정한다. 국내·외 임상시험 지원 12개, 맞춤형 규제과학 평가기술 개발과 국제표준 지원 등 21개가 제시된다. 연구실에서 끝나지 않고 병원 문턱과 해외 규제 장벽을 넘게 하겠다는 의도가 예산 구조에서 드러난다

 

이 3트랙 분해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의료기기 산업의 실패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설계로 보인다. 의료기기는 ‘기술’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임상 근거와 인허가, 표준과 보험·구매 체계, 병원 워크플로우까지 맞물려야 제품이 된다. 전주기 모델이 강조돼 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만 전주기를 내세운다고 해서 모든 구간이 자동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번 사업은 트랙을 쪼개 예산과 목표를 명시함으로써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드러내고, 막힌 지점에 공공자원을 꽂겠다는 선택을 한 셈이다

 

이번 2기 사업은 1기 성과를 “단절 없이 이어가겠다”는 논리 위에 서 있다. 정책브리핑에 공개된 2025년 11월 보도자료는 1기 사업이 2020~2024년 동안 467개 과제를 지원했고, 국내외 인허가 433건(국내 331건, 해외 102건), 기술이전 72건, 사업화 254건의 성과를 거뒀다고 정리한다. 1기가 보여준 숫자는 전주기 접근이 “성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말하면, 2기 사업이 기대치를 더 올리려면 “전주기라는 틀”을 넘어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길지”가 더 선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기의 목표치는 더 공격적이다. 보도자료는 성과목표로 세계 최초·최고 수준 의료기기 6건 확보, 필수 의료기기 13건 국산화, 연 매출 100억 원 이상 의료기기 9건 개발, 상급종합병원 도입 22건 등을 제시한다. 또한 집중 육성 분야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진단/치료), 유헬스케어 의료기기, 의료용 로봇, 의료용 임플란트, 중재의료기기, 차세대 분자진단 등 ‘6대 미래 유망 분야’를 명시했다. ‘전주기’가 방법론이라면, ‘6대 분야’는 전장(戰場)이다. 전주기 지원을 하되, 승산 있는 전장에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비교가 필요해진다. 1기가 생태계 저변을 넓히는 방식(많은 과제·다양한 참여)을 취했다면, 2기는 플래그십 5개를 전면에 내세우고 “게임체인저”라는 표현으로 상징 자본을 강화한다. 국가 R&D가 종종 빠지는 함정은 ‘쇼케이스’ 중심의 과도한 기대다. 플래그십이 성공하면 파급효과가 크지만, 실패하면 예산 낭비 프레임이 즉시 작동한다. 따라서 플래그십은 기술 난이도만큼이나 사업관리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다. 반면 코어기술·제품개발 68개와 의료현장 진입 33개는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제공한다. 즉, 2기의 구조는 “상징성(플래그십) + 분산(코어·현장)”의 혼합형이다. 위험을 감수하되, 위험을 관리하려는 흔적이 예산 배치에 함께 존재한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실무적인 진전은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전주기 사업과 우수 기초·원천 과제를 제품화 개발로 연계 지원한다는 10개 과제는, 국가 R&D의 고질병인 “연구는 끝났는데 제품은 없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기초·원천에서 PoC까지 간 성과가 다음 단계(시제품 고도화·임상 설계·인허가 전략·양산 설계)로 넘어가지 못해 사장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브리지 자금’과 ‘규제·임상 로드맵’이다. 2기 사업이 연계 지원을 별도 트랙처럼 명시한 것은, 단절을 줄이는 데 정책이 한 발 더 들어왔다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연계 지원이 성공하려면 “무엇을 우수 성과로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논문·특허가 아니라 임상적 유효성의 가설, 환자군 정의, 사용 시나리오, 경쟁 제품 대비 차별성, 제조·품질 시스템까지 보아야 한다. 보도자료가 의료현장 진입역량 강화 트랙에서 규제과학·국제표준을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이어달리기의 성패는 “기술 평가”가 아니라 “제품·시장·규제 평가”의 정교함에 달릴 가능성이 높다. 

 

2기 사업이 ‘필수의료기기 국산화’를 반복해 강조하는 이유는 채산성 문제 때문이다. 신생아·소아용 인공호흡기 등은 시장 규모가 작고, 임상·품질 요구 수준이 높아 민간이 단독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보도자료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를 7개(2026년 과제 기준)로 제시하고, 전체 성과목표에서는 13건 국산화를 목표로 제시한다. 이 영역에서 국산화는 산업정책이자 안보정책이다. 팬데믹과 공급망 충격을 경험한 이후, 필수 품목의 해외 의존을 줄이려는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보건안보 대응역량 확보’가 사업목적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국산화 정책은 “만들면 끝”이 아니라 “쓰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급종합병원 도입 22건 같은 목표를 문서에 적어 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의 구매·평가·유지보수 체계, 임상의의 채택 동기, 보험·수가와의 연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산화는 재고로 남는다. 따라서 필수의료기기 트랙은 기술개발과 동시에 조달·구매 정책, 임상 교육, 유지보수 생태계까지 동시 설계해야 하는데, 보도자료는 그 지점까지 구체화하진 않는다. 이 공백은 향후 RFP와 평가·사후관리에서 메워져야 한다. 

 

범부처 사업의 강점은 부처 칸막이를 낮춘다는 점인데, 의료기기에서는 특히 식약처의 참여가 결정적이다. 2기 사업은 의료현장 진입역량 강화 트랙에서 맞춤형 규제과학 평가기술 개발과 국제표준 지원을 21개 과제로 명시한다. 식약처가 단순한 “승인 기관”이 아니라 “근거 생산 체계의 공동 설계자”로 들어오면, 개발 초기부터 인허가 전략과 임상 설계가 정렬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규제과학이 ‘지원 사업’으로만 소비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기업과 연구팀이 규제 대응을 외주처럼 여기고, 문서 작성 중심으로 흐르면 실질적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규제과학 지원의 핵심은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에 견딜 데이터를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생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도자료가 “안전성을 담보한 과학적 근거 마련”을 표현으로 넣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2월 6일부터 3월 9일까지 신규과제 공고를 진행하고, 2월 13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산·학·연·병 대상 사업설명회를 연다고 밝혔다.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KMDF) 공고를 통해 상세 내용을 안내하며, 설명회는 KMDF 유튜브 생중계로도 진행된다. 문서에는 ‘미충족의료수요 기반 의료제품설계서(1단계-기초양식)’ 안내가 포함돼 있다. 이는 과제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술이 아니라 수요”를 중심에 놓겠다는 방향성을 드러낸다. 

 

이 장치는 평가의 언어를 바꿀 여지가 있다. 기존 R&D가 기술 성능과 논문 중심으로 흘렀다면, ‘미충족 수요’ 양식은 임상 현장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먼저 정의하게 만든다. 다만 양식이 늘어난다고 수요 기반이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 형식적 작성이 반복되면 오히려 연구자의 행정 부담만 커진다. 결국 관건은 평가위원 구성과 평가 기준의 일관성이다. ‘수요 기반’이라면서 실제 평가는 ‘기술의 화려함’에 끌려가면, 현장형 과제는 다시 밀려난다. 

 

정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의료기기 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다. 방향은 명확하다. 문제는 속도와 일관성이다. 의료기기는 반도체처럼 스케일만으로 이기기 어려운 분야다. 임상 데이터, 신뢰, 규제 적합성, 병원 채택 경험이 누적되어야 한다. 그 누적의 시간을 줄이려면 “전주기”가 아니라 “전주기+전략”이 필요하다. 2기가 플래그십과 6대 분야를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판적으로 보면, 목표 숫자(세계 최초·최고 6건, 국산화 13건, 매출 100억 이상 9건 등)는 선언에 가깝고, 달성 경로는 RFP와 사업관리에서 증명돼야 한다. 플래그십은 상징성이 큰 만큼 성과 측정도 더 엄격해야 한다. “세계 최초”라는 문구가 기술적 최초인지, 임상 적용 최초인지, 상용화 최초인지가 애매하면 공공 R&D의 신뢰가 흔들린다. 반대로 이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의료현장 진입 트랙에서 임상·규제·표준을 제대로 밀어준다면, 2기는 1기가 만든 전주기 기반 위에서 ‘글로벌 확장’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결국 이번 사업의 성패는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첫째, 이어달리기가 “성과의 연장”이 아니라 “제품의 완성”으로 이어지는가. 둘째, 필수의료기기 국산화가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실제 도입·유지보수 생태계로 확장되는가. 셋째, 규제과학·국제표준 지원이 문서 작업을 넘어 데이터 생산 능력을 키우는가. 보도자료는 방향과 구조를 제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구조가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국민의 의료 접근성과 산업 경쟁력으로 환원되는지의 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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