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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아침, 혹은 나른한 오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침묵의 저격수가 있다. 불과 1분 전까지 웃으며 대화하던 가족이 갑자기 말을 잃고, 손에 쥔 컵을 떨어뜨리며 스러진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6초에 한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질환, 바로 뇌졸중(Brain Stroke)의 현장이다. 암이 서서히 생명을 갉아먹는 병이라면, 뇌졸중은 단 일격에 인간의 존엄성과 일상을 파괴한다. 이것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뇌혈관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며, 그 승패는 당신이 ‘전조증상’을 얼마나 빨리 알아채고 ‘골든타임’을 사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인 남성 주먹 두 개 크기, 체중의 약 2%에 불과한 1.4kg의 뇌. 하지만 뇌는 심장이 뿜어내는 혈액의 20%를 독점하고,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25%를 소비하는 신체의 사령탑이다. 뇌졸중은 이 사령탑으로 가는 보급로가 끊기는 사태다. 뇌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뇌경색(허혈성 뇌졸중)’과 혈관이 터져서 발생하는 ‘뇌출혈(출혈성 뇌졸중)’을 통칭한다. 과거에는 뇌출혈 환자가 많았으나, 식습관의 서구화와 고령화로 인해 현재는 뇌경색이 전체 뇌졸중의 약 80%를 차지한다.
뇌세포는 굶주림을 참지 못한다. 혈류가 차단되는 순간부터 뇌세포는 초당 3만 개, 분당 190만 개씩 사멸하기 시작한다. 한 번 죽은 뇌세포는 어떤 명의가 와도 되살릴 수 없다. 이것이 뇌졸중이 가진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의 공포다. 혈류 공급이 중단된 중심부(Core)의 세포는 수 분 내에 괴사하지만, 그 주변부에는 아직 죽지 않고 버티는 ‘허혈성 반음영(Penumbra)’ 지역이 존재한다. 뇌졸중 치료의 핵심은 바로 이 반음영 지역의 세포들이 완전히 사멸하기 전에 혈류를 재개통시키는 데 있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다. "Time is Brain(시간은 곧 뇌다)." 뇌졸중 치료에서 시간은 생명이자, 남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유일한 척도다. 의학계에서 정의하는 1차 골든타임은 발병 후 4.5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정맥 내 혈전용해제(tPA)’를 투여받으면, 막힌 혈관을 화학적으로 녹여 뇌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의학 기술의 발전은 이 골든타임을 조금 더 확장했다. 굵은 뇌혈관이 막힌 경우, 사타구니의 대퇴동맥으로 카테터(가느다란 관)를 집어넣어 뇌혈관 속의 혈전(피떡)을 물리적으로 끄집어내는 ‘동맥 내 혈전제거술’이 가능해졌다. 이 시술은 발병 후 6시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대 24시간까지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숫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24시간’은 최후의 마지노선일 뿐, 치료 성공률은 1분 1초가 빠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치료가 15분 늦어질 때마다 3년 후 생존할 확률과 장애 없이 생활할 확률은 10% 이상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뇌졸중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국내 뇌졸중 환자가 첫 증상 발생 후 응급실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평균 3시간을 훌쩍 넘긴다. 검사와 진단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4.5시간의 골든타임을 지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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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늦어지는가? 가장 큰 원인은 ‘방심’과 ‘무지’다. 많은 환자가 증상을 겪고도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단순히 체했나 보다",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없나"라며 시간을 지체한다. 특히 주말이나 야간에 증상이 발생하면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라고 미루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잘못된 민간요법이다. 갑자기 쓰러진 환자의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서 검은 피를 내는 행위는 의학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통증으로 인해 혈압을 급상승시켜 뇌출혈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의식이 흐릿한 환자에게 억지로 우황청심환이나 물을 먹이는 행위는 살인미수나 다름없다. 뇌졸중으로 인해 연하 곤란(삼킴 장애)이 온 상태에서 이물질이 기도로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을 유발하거나 기도를 막아 질식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현명한 대처는 즉시 119를 부르는 것뿐이다.
뇌졸중은 불시에 찾아오지만, 뇌는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낸다. 이를 포착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조기 진단법 ‘FAST’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째, Face(얼굴) 다. 환자에게 "이~" 하고 웃어보게 하라.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거나 얼굴의 좌우 대칭이 무너져 비뚤어진다면 안면 마비다. 둘째, Arm(팔)이다.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게 하라. 한쪽 팔이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지거나 회전한다면 편마비가 온 것이다. 젓가락질이 서툴러지거나 물건을 자꾸 놓치는 것도 전조다. 셋째, Speech(언어)다. 간단한 문장을 말하게 하라. 발음이 어눌하거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면 언어 중추가 손상된 것이다. 넷째, Time(시간)이다. 위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즉시’ 119에 신고해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해 ‘BE-FAST’로 교육하기도 한다. Balance(균형)는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비틀거림을, Eyes(눈)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거나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을 뜻한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미니 뇌졸중’이라 불리는 ‘일과성 허혈 발작(TIA)’이다.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 뚫리면서 증상이 나타났다가 24시간 이내(대게는 1시간 이내)에 씻은 듯이 사라진다. 환자들은 "이제 괜찮네"라며 병원을 가지 않지만, 이는 대재앙의 예고편이다. 미니 뇌졸중 환자의 10~15%가 3개월 이내에 진짜 뇌졸중을 겪는다. 증상이 사라졌더라도, 혈관 어딘가가 좁아져 있거나 혈전이 떠다니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즉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뇌졸중을 노인성 질환으로만 치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30~40대, 심지어 20대 환자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생활, 운동 부족, 흡연과 음주는 젊은 혈관을 병들게 만들었다. 젊은 층은 자신이 뇌졸중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기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젊은 나이에 발병할수록 남은 기대수명이 길기 때문에, 후유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기간도 길어진다. 이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 손실로 이어진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방세동(부정맥)은 뇌졸중의 4대 위험 인자다. 특히 고혈압은 뇌졸중 위험을 4~5배 높인다. 문제는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처럼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의 혈관 숫자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에게도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급성기 치료가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면, 이후 이어지는 재활 치료는 삶을 되찾기 위한 긴 순례와 같다. 뇌졸중은 반신마비, 언어 장애, 삼킴 장애, 인지 기능 저하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 이론에 따라, 손상되지 않은 주변 뇌세포들이 훈련을 통해 죽은 세포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기다. 발병 후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뇌의 회복력이 극대화되는 이 시기에 얼마나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느냐가 평생의 장애 정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자는 깊은 우울감을 경험한다. 어제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던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뇌졸중 환자의 약 30%가 우울증을 겪으며, 이는 재활 의지를 꺾는 가장 큰 적이다. 따라서 뇌졸중 치료는 환자의 신체적 기능 회복뿐만 아니라, 가족의 지지와 정신적 케어가 동반되어야 하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겨울철의 찬 바람만이 위험한 것이 아니다. 실내외 온도 차가 큰 여름철 냉방, 일교차가 큰 환절기 모두 뇌혈관에는 스트레스다. 뇌졸중은 어느 날 갑자기 운 나쁘게 걸리는 병이 아니다. 당신이 수십 년간 먹고, 마시고, 생활해온 습관이 혈관에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싱겁게 먹기, 매일 30분 유산소 운동, 금연, 절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 기본 수칙들이야말로 뇌졸중이라는 공포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백신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뇌졸중과의 싸움은 속도전이다. 내 가족의 입이 비뚤어지고 말이 어눌해지는 그 순간, 당신의 판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당황하지 마라. 바늘을 찾지 마라. 주저 없이 119를 눌러라. 구급차 안에서의 1분은 병원에서의 1시간, 재활 치료실에서의 1년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골든타임 4.5시간, 그 시간 안에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열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