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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 시장이 비만 치료제라는 거대한 '골드러시'에 휩싸였다.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쏘아 올린 '위고비'의 성공 신화에 미국의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젭바운드'로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며, 시장은 바야흐로 양강(Duopoly) 체제로 재편되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랠리의 이면에는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공급망 병목(Bottleneck)'이라는 심각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핵심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의 효과 입증이었다. 위고비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 식욕을 억제하는 단일 기전으로, 임상 시험에서 평균 15% 안팎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는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젭바운드는 GLP-1뿐만 아니라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자극 폴리펩타이드) 수용체까지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Dual Agonist)'다. 두 개의 호르몬 경로를 동시에 공략함으로써 젭바운드는 임상 시험(SURMOUNT-1)에서 최대 20%가 넘는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했다. 이는 단순히 살을 빼는 약을 넘어, 비만 대사 수술에 버금가는 효과를 약물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효능의 우위를 바탕으로 젭바운드는 출시 직후부터 위고비의 시장 점유율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더 강력한 체중 감량을 원하는 환자들은 결국 젭바운드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승패를 가를 진짜 변수는 '누가 더 잘 만드느냐'가 아닌 '누가 더 많이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약물 모두 펜 형태의 주사제(Autoinjector)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이 약물의 원료 생산부터 멸균 충전 및 포장(Fill-Finish) 공정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수요는 두 회사의 생산 능력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 FDA의 의약품 부족 목록(Drug Shortages List)에 두 약물이 장기간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이러한 '쇼티지(Shortage, 공급 부족)' 현상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시장 점유율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환자가 처방전을 받아도 약국에 재고가 없어 약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결국, 소비자는 '더 좋은 약'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공급난 타개를 위해 먼저 칼을 빼 든 것은 노보 노디스크였다. 노보 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 홀딩스는 세계 최대의 의약품 위탁생산(CDMO) 기업인 카탈런트(Catalent)를 165억 달러(한화 약 22조 원)에 인수하는 초대형 M&A를 단행했다.
이 거래의 핵심은 카탈런트가 보유한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 인디애나주의 충전·마감(Fill-Finish) 공장 3곳을 노보 노디스크가 직접 소유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외부 협력사에 의존하던 생산 공정의 핵심 병목 구간을 내부화(Internalization)하여 위고비 생산량을 즉각적으로 증대시키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이 인수가 완료되면 노보 노디스크의 생산 역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라이 릴리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릴리는 경쟁사의 M&A에 대해 독과점 우려를 제기하는 한편, 자체 생산 시설 확충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릴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와 독일 등에 새로운 첨단 제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특히 릴리는 위스콘신주에 있는 넥서스 파마슈티컬스(Nexus Pharmaceuticals)의 제조 공장을 인수하는 등 자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릴리의 CEO 데이비드 릭스는 "우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제조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2024년 하반기부터는 젭바운드의 공급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릴리는 주사제 펜 내부의 복잡한 부품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품 공급망 다변화에도 힘쓰고 있다.
두 거인의 공급 부족 사태는 예기치 않은 '회색 시장'을 키웠다. FDA 규정에 따르면, 정식 승인된 약물이 공급 부족 목록에 오를 경우, 약국이나 조제 시설에서 원료를 배합해 만드는 '컴파운딩(Compounding, 임의 조제)' 약물이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이 틈을 타 수많은 온라인 헬스케어 업체와 웰니스 클리닉들이 위고비나 젭바운드와 동일한 성분의 칵테일 주사를 정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오리지널 제약사들에게 매출 손실뿐만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품질로 인한 안전성 이슈라는 잠재적 리스크를 안겨주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최근 불법 복제약 판매 업체들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출 방어가 아니라, 브랜드 신뢰도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조치다.
공급망 이슈는 단기적인 승부처일 뿐, 장기적인 경쟁은 결국 '편의성'과 '차세대 기술'로 넘어갈 것이다. 현재 주사제 형태의 불편함을 해소할 '경구용(먹는) 비만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의 고용량 임상을 진행 중이며, 일라이 릴리는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이라는 비펩타이드성 경구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더 나아가 일라이 릴리는 GLP-1, GIP에 이어 글루카곤 수용체까지 자극하는 '삼중 작용제'인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의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이는 24%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여, 상용화될 경우 비만 치료제 시장의 '종결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고비와 젭바운드의 대결은 단순히 의학적 효능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넘어섰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관리(SCM), 대규모 자본 투자, 그리고 규제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이 총동원된 총력전이다.
단기적으로는 카탈런트 인수를 통해 생산 병목을 해소하려는 노보 노디스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으나, 더 강력한 효능과 공격적인 자체 설비 투자를 앞세운 일라이 릴리의 추격 또한 매섭다. 결국,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급 시스템'을 먼저 구축하여,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약을 손에 쥐여줄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이제 막 1라운드를 지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