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생성 이미지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은 오랫동안 현대 의학의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1906년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이 병을 처음 보고한 이래, 인류는 기억을 갉아먹는 이 잔인한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2024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키선라(Kisunla, 성분명 도나네맙)'를 승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에자이·바이오젠의 '레켐비(Leqembi)'에 이은 두 번째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의 등장은 단순한 신약 출시를 넘어,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증상 완화'에서 '질병 조절(Disease Modifying)'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선포하는 사건이다. 본지는 키선라의 핵심 임상 데이터인 TRAILBLAZER-ALZ 2 연구를 해부하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 부딪히게 될 현실적 장벽과 시장의 파급력을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키선라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속도'와 '종료'다. 총 1,736명의 초기 증상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3상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정도를 예측하는 타우(Tau) 단백질의 축적량에 따라 환자군을 분류했다. 타우 축적이 낮거나 중간 수준인 초기 환자군에서 키선라는 위약군 대비 인지 및 기능 저하 속도를 약 35%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iADRS(통합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환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간을 유의미하게 연장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질병의 극초기 단계인 경도인지장애(MCI) 환자군으로 범위를 좁혔을 때, 그 효과는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뇌세포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파괴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조기 치료의 당위성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키선라를 진정한 혁신으로 평가받게 하는 요소는 효능 수치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치료 중단(Stop-dosing)' 프로토콜이다. 기존의 만성 질환 치료제나 경쟁 약물인 레켐비가 평생 투여를 전제로 하는 것과 달리, 키선라는 뇌 내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일정 수준(25 센틸로이드 미만)으로 제거되면 투약을 멈추도록 설계되었다. 실제 임상에서 환자의 약 17%가 6개월 만에 치료 목표를 달성해 투약을 중단했으며, 1년 시점에는 47%가 치료를 마쳤다. 이는 환자에게 '끝이 보이는 치료'라는 심리적 안도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의료 비용과 부작용 노출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게임 체인저적 요소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아밀로이드 표적 치료제의 숙명과도 같은 부작용인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 발생률에서 키선라는 경쟁 약물 대비 높은 리스크를 노출했다. 뇌부종을 동반하는 ARIA-E의 경우 키선라 투여군의 24%에서 관찰되었으며, 미세출혈을 동반하는 ARIA-H는 31%에 달했다. 레켐비의 ARIA-E 발생률이 약 12% 수준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특히 임상 시험 도중 발생한 3건의 치료 관련 사망 사례는 의료진들에게 묵직한 경고를 남겼다. 이들 대부분은 ARIA와 관련된 중증 뇌부종이나 출혈이 원인이었다. FDA는 이에 대해 처방 정보 최상단에 '박스형 경고(Boxed Warning)'를 부착하도록 명령하며, 처방 전 유전자 검사(APOE4 유전자 보유 여부 확인)와 정기적인 MRI 모니터링을 의무화했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부작용 데이터가 실제 임상 현장(Real World Practice)에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엄격하게 통제된 임상 시험과 달리, 기저 질환이 다양하고 고령인 일반 환자들에게서 ARIA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응급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가 관건이다. 결국 키선라의 성패는 약효 자체가 아니라, 일선 병원들이 이 부작용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Management)'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월가와 글로벌 제약 업계는 키선라의 등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키선라의 미국 내 출시 가격을 12개월 기준 32,000달러(약 4,400만 원)로 책정했다. 이는 경쟁작 레켐비의 연간 약가 26,500달러보다 약 20% 높은 금액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릴리 측은 "총 치료 비용(Total Cost of Treatment)" 개념을 앞세워 방어 논리를 펼친다. 레켐비가 매년 지속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반면, 키선라는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1년 내에 투약을 중단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고민하는 각국 보건 당국에게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
Gemini 생성 이미지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비용인 '진단 및 모니터링 비용'이 존재한다. 키선라 투여를 위해서는 고가의 아밀로이드 PET 스캔이 필수적이며, 투약 기간 동안 ARIA 감시를 위해 수차례의 MRI 촬영이 동반되어야 한다.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조차 환자 등록 시스템을 통한 데이터 수집을 조건으로 급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실제로 부담해야 할 본인 부담금(Out-of-pocket cost)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이다.
약물이 승인되었다고 해서 환자에게 바로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의료 현장은 '진단 병목(Diagnostic Bottleneck)'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첫째, 인프라의 부족이다. 아밀로이드 양성 여부를 확진할 수 있는 PET 장비와 판독 전문의는 대형 병원에 편중되어 있다. 뇌척수액(CSF) 검사는 침습적이라 환자들이 꺼린다. 혈액으로 간단히 진단하는 바이오마커(Blood-based biomarker, 예: p-tau217) 기술이 발전하고는 있으나, 아직 확진용으로 널리 상용화되기 전 단계다. 둘째, 투약 편의성의 딜레마다. 키선라는 4주 1회 정맥 주사로, 2주 1회인 레켐비보다 내원 횟수가 적어 편의성이 높다. 하지만 투약 시간 자체보다 ARIA 모니터링을 위한 잦은 MRI 예약과 대기가 환자와 보호자를 지치게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쏟아지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을 모두 스크리닝하고 안전하게 투약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전문 센터 중심의 치료 프로토콜 정립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도나네맙과 레켐비는 모두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지만, 구체적인 타깃은 미묘하게 다르다. 레켐비가 아밀로이드의 중간 형태인 '프로토피브릴(Protofibrils)'에 결합해 독성을 중화시킨다면, 도나네맙은 이미 굳어진 플라크 형태인 'N3pG' 아밀로이드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이를 강력하게 제거한다. 이러한 기전의 차이가 더 빠른 플라크 제거 속도와 심층적인 제거(Deep clearance)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것이 '투약 중단'을 가능케 한 생물학적 근거다.
향후 알츠하이머 치료 시장은 단독 요법을 넘어 '병용 요법(Combination Therapy)'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아밀로이드를 청소하는 키선라와, 신경세포 사멸의 직접적 원인인 타우 엉킴을 막는 약물, 혹은 뇌 내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약물을 섞어 쓰는 방식이다. 릴리와 에자이 모두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 타우 표적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다. 또한, 정맥 주사가 아닌 피하 주사(SC) 제형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자가 투여가 가능한 SC 제형이 나온다면, 현재의 병목 현상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도나네맙(키선라)은 알츠하이머병을 '불치병'의 영역에서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역사적인 이정표다. 뇌 속의 찌꺼기를 청소하고 치료를 멈출 수 있다는 개념은 환자들에게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볼 때, 키선라는 아직 '완전한 정복'과는 거리가 있다. 35%의 지연 효과는 병의 진행을 멈추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수준은 아니다. ARIA라는 안전성 리스크는 여전히 살얼음판과 같고, 고비용 구조와 진단 인프라의 한계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키선라가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알츠하이머는 더 이상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생물학적 표적을 가진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의료진의 정밀한 모니터링, 사회적 비용에 대한 합의, 그리고 조기 진단 기술의 발전이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망각 없는 노후'라는 인류의 오랜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2024부터 시작된 이 거대한 실험이 해피 엔딩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값비싼 수업료로 남을지는 이제부터의 '실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