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출산율 반등한다지만 아직 갈 길 멀다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소식은 우리 사회에 결혼과 출산에 관한 하나의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바로 혼외 출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평소 여러 선행 등으로 반듯한 이미지를 쌓아온 톱스타가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되 친모와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끌었다.
정우성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반응과 더불어 그의 '선택'을 응원하는 반응도 적잖다. 한 야당 여성의원은 26일 SNS에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혼인해야 하고 동거 부양 의무를 지며 부부로 살아야 한다는 게 숨이 막혀 온다"고 했다.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근거한 갑론을박이 연일 이어지면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혼외 출산 문제가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나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런 관심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혼외 출산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외 출생자는 1만900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전체 출생아 23만명의 4.7%로 20명 가운데 1명이 혼외자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비혼 출산뿐 아니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출산한 경우도 포함된다. '결혼과 출산은 별개'라는 인식도 많이 늘었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를 보면 올해 20~29세 가운데 42.8%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2014년 조사 때 30.3%와 비교해 10년 새 12.5% 포인트나 증가했다.
세계 꼴찌인 우리나라 출산율도 올해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최근 국회와 정부 쪽에서 잇달아 나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달 25, 26일 연이틀 공개 행사에서 올해 합계출산율이 0.74명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출산율은 2015년 1.24명 이후 계속 떨어졌는데 지난해는 0.72명이었다. 이번 예측이 맞는다면 9년 만에 출산율이 반등하는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발표한 '2025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출산율을 0.74명으로 예측했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9월 인구동향'에서도 올해 3분기 출생아 수가 6만1천288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0% 늘었다. 2012년 4분기 이후 약 12년 만에 가장 큰 폭 증가라고 한다.
초저출산으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는데 출산율 반등 조짐은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관련 온라인 기사에도 수백개 댓글이 달렸다.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과 함께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가 아니길 바란다는 글이 눈길을 끈다. 주식 폭락장에도 가끔 주가가 튀어 오르는 것을 '죽은 고양이가 꿈틀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용어에 빗대 저출산 고착화에 앞선 일시적 출산율 반등이 아니기를 기대하는 심정이 담겼을 것이다.
관건은 출산율이 추세적 반등으로 이어지느냐다. 올해 예측된다는 출산율 0.74명은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한참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평균 출산율은 2022년 기준 1.51명이다. 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0명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한국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스페인(1.16명)과도 격차가 크다. 종국에 대체출산율(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 2.1명까지는 갈 길이 한참 멀다.
올해 들어 출생아 수 증가는 코로나19 탓에 미뤄졌던 결혼이 다시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최근 각종 조사에서 젊은 층의 혼인 의향이 높아진 것으로 봐서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부분도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출산율 1.0명을 목표로 한다.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3대 핵심 분야 중심의 저출생 대책이 출산율의 미세한 증가는 가져올 수 있어도 장기적인 추세 반전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2030년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인구 문제에 영향을 주는 사회 구조적 문제 개선에 꾸준히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문화적 영향도 적잖다.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과 결혼, 출산의 개념이 강하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출산에 대한 수용성은 여전히 낮다. 정부의 출산·양육 지원 대책도 '정상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혼 출산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평균 비혼 출생률은 41.9%다. 프랑스 62.2%, 영국 49.0%, 미국 41.2%, 호주 36.5% 등으로 대부분이 한국(4.7%)과 큰 차이가 난다.
'출산이라는 것이 결혼제도에 반드시 구속되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결실이 되는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하다'(김현성 작가)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저출생 정책에서 나아가 다양한 가족과 양육 방식을 존중하는 법과 제도적 정비도 늦출 일이 아니다. 비혼 출산의 비중과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 맞춰 이를 지원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기사발신지=연합뉴스]